전원책과 이안, 해선 안 될 말

Posted 2007. 7. 16. 11:25

전원책 이 분, 예전에 담배 관련 토론에서 꽤 인상적인 토론 태도를 보여서 기억에 남아 있는 분이다. 얼마 전엔 군 가산점 토론에서 한 건 하셔서 이젠 거성으로 불린다. 요즘 보니 웬 젊은 여자가 전거성에게 개겨서 씹히고 있더군. 아니, 이제 그 젊은 여자를 옹호하는 의견도 있으니 내일 쯤에는 전거성이 전낙성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의 결말이 다 그런거지.

문제는 내가 마초를 좀 싫어하는 것도 있지만, 그 돌아다니는 20초 동영상을 아무리 봐도 전원책씨가 화를 내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는 말이지. 그리고 화를 내는 대상이 이안씨인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상황을 파악하기 힘드니 전체 동영상을 봤다.

그 화를 내는 동영상 부분의 스크립트다.

-오한숙희 : 그런데 집에서 남자가 아이 보고 일하고 여자가 돈 벌면 스트레스를 받죠?
-전원책 :정상적인 얘기하고 답답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보면 저는 별나라 온 것 같아요,
지금.
-이안 :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자녀분이 어떻게 되세요? 아들만 있으세요? 아니면...
-전원책 :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애가 없습니다. 늦게 결혼해서......
-이안 : 진짜요? 그러니까 이러시는구나. 저는 저분이 제 아빠면...
-전원책 : 방금 말씀하신 건 정말 옳지 못한 토론 태도예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남의 가족사를 들어서 그래서 그렇구나라든지...
-이안 :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전원책 : 그건 정말 예의 없는 말입니다.
-오한숙희 :그런데 지금
부인께서도 일을 하시고 누님도 일을 하시고 집안에서도 평등하게 자라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생활하셨으면서 집안에서 남자가 살림하고 애 보고 부인이 돈을 번다, 그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남자들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그러셨는데 그렇게 살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굵은 글꼴로 표시한 것은 돌아다니는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파란색 부분에선 다른 패널들이 웃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결혼 늦게 해서 애가 없는 것이 왜 죄송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꺼내는 가족사라는 말이 참 당황스럽고,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서 이안을 나무라는 상황은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다. 참 올바른 토론 태도 되겠다. 이걸 가지고 사과를 하는 이안씨나 괜찮다고 포용력을 보이는 척 하는 전원책씨나 나야말로 별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다.

패널들이 웃은 거 보고 재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 많던데 전체 토론 동영상을 보면서 이안이 말할 때 나도 킬킬거리고 웃었다. 가부장 마초 버럭이에게 한 방 제대로 날렸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거기서 버럭이가 버릇을 못 버리는 바람에 분위기 썰렁해졌지만 그 책임을 온통 이안에게 묻는 건 뭐랄까,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나이 덕이나 입는다는 세간의 속설을 보는 것 같다랄까.

애를 갖고 싶어도 못 가지는 것-이것 역시 추측이지만-은 분명 아픔이고 보호 받아야 할 프라이버시인 것은 맞지만 이안씨가 의도한 것은 전원책씨만 아는 그 가족사를 건드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씨 머리 속을 내 알바는 아니지만 전원책씨가 아들만 있어요라고 하거나 아들 딸 있습니다,라고 하는 경우에 대한 다른 대답만 준비했을 뿐 애 없다는 대답이 나올거라고는 생각 못 했겠지. 결국 그걸 딸 없다라는 대답과 같은 걸로 받아들이고 비꼰 거라고 생각한다. 패널들 역시 웃었지만 그게 전원책씨의 가족사를 비웃은 것일까?

서론 참 길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 무의식적인 웃음에 대한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웃었을까? 그 토론에서 전원책씨의 다른 말을 좀 보자.

-전원책 : 그런데 제가 오늘 가만히 이 자료들을 쭉 살펴보면서 왜 알파걸이 나왔느냐 보니까 몇 가지가 나왔어요. 댄 교수가 썼던 게... 그런데 그중의 하나가 논리적이다, 여성이 논리적이다. 맞죠, 확실히 성장기에 있어서는 남자보다도 여자가 더 논리적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이라는 게 말이죠, 보면 이 인간이라는 것은 대단히 비논리적인 개체입니다. 그걸 철학에서는 이올로직구조라고 얘기하거든요. 부조리한 존재예요.
기계적으로 암기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커리큘럼에서 기계적으로 암기 위주로 공부해서 논리적인 사고를 갖춘 사람이 과연 깊이 사고하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느냐, 이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대단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세계적인 철학가, 음악가, 시인, 화가 이런 사람들 중에 정말 많은 사고를 하고 깊이 사색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안 : 홍보가 안 된 것 아닐까요?
-전원책 :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니죠, 왜 그런가 하면 여성은 세밀한 부분에 굉장히 뛰어납니다, 남자보다.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치밀해요.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는 대단히 논리적이에요. 그런데 남자는 그와는 좀 다릅니다. 좀 다방면의 시각을 가지거든요.
대신에 부조리한 시각에 측면에 있어서는 대단히 빠른 해석을 가집니다.
그래서 거시적으로 볼 줄 알고 깊이 있게 사색하는 건 아무래도 남자가 앞서는 거예요.

그런데 과연 이런 식의 교육 커리큘럼에서 여성이 시험쳐서 1등한다, 사법시험에서 1등 한다, 그래서 연수원 성적으로, 그것도 암기 위주입니다, 결국은.
그래서 판결문 시험에 열심히 잘해서 1등 한다, 그래서 그 순서대로 판사를 임용한다, 과연 그 사람들이 인간학에 대해서 제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냐, 저는 회의적
입니다.

-전원책 : 여성을 진출을 제가 반대하지 않는 것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일해야 될 부분이, 또 여성의 그런 두뇌, 이것이 필요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여성의 세밀함이 필요한 부분이. 똑같은...
-오한숙희 : 여성만 세밀함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세밀함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원책 : 여성이 세밀하고 치밀한 부분에서는 남자보다 우월하다고 얘기했지 않습니까?
-오한숙희 : 그렇지 않다고 저는 생각해요.
-전원책 : 저는 그렇게 공부를 했으니까. 그러면 그런 논리에서 계속 사세요. 남자는 대신에 크게 보고 거시적이고 깊이가 있다고 내가 얘기를 했지 않습니까?
그건 제 논리예요.
그건 그 반대되는 논리를 갖고 계시면 애초에 저하고는 얘기가 안 되는 거고.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여성이었다면 버럭했을 이야기 방송에 참 많이 나오더라. 여성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남성인 나는 나찌 시대 우생학 수준의 믿음을 논리라고 말하시는 전원책씨를 보면서 낄낄거리고 웃었다. 딸이 없어서 전원책씨가 그런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이안씨처럼, 여성이 아닌 나는 전원책씨 수준의 믿음이 그냥 코메디로만 느껴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성들에게 내 얄팍한 감성을 사과해야겠다. 하옇든 내 느낌으로는 애당초 토론의 룰을 어기고 있는 건 전원책씨다. 자신의 믿음을 논리라고 말하고, 반대되는 논리는 대화 상대로 삼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 토론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이안씨의 발언은 이런 억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나왔고, 주변 사람들은 무엇인가 통쾌해서 웃었다. 그 웃음이 결과적으로 전원책씨에게 준 상처, 그걸 인지할 정도의 균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원책씨가 여성이라는 대상에 준 상처 역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안 역시 여성이고 엔똘에는 엔똘로 대처한 거라고 볼 수는 없는건가? 시장 바닥의 개싸움에서 갑자기 엄격한 룰을 그것도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태도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문 것은 아무리 봐도 전원책씨인데 말이다.

그 토론 같지도 않은 방송 프로에서 발생한 헤프닝이 이안이라는 존재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난 것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는 혹시 전원책씨와 같이 자신의 믿음이 논리라고 믿고 그 믿음과 어긋나는 일들은 비논리라고 매도한 후 대화를 거부하거나 나이, 직위 등의 우월성을 이용해 호통으로 나무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냐는 말이다.

내가 전원책씨라면 다짜고짜 화를 낸 것이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은데, 나는 가끔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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