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빠를 위한 각성제

Posted 2007. 8. 9. 09:07

심형래씨가 말하는 SF가 Science Fiction인지 Special eFfect인지 내 알바 아니지만 그게 본질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의미하는 거라는 건 알겠다. 그럼 CG 기술만 있으면 되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시길. 우리가 그림을 못 그려서, 애니메이터가 없어서 일본 같은 애니메이션을 못 만들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각성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듯.

많이 본다는 것으로 디워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줄 것은, 귀여니가 지금까지 4백만권에 이르는 책을 팔아치웠지만 귀여니의 책을 명작이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 상품성이라는 것과 작품성이라는 것은 양립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 잘 팔리는 상품이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디워가 구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글을 한 번씩 더 읽어볼 것. 그들이 잘 팔리는 상품으로서의 '디워'를 구리다고 하는 것인지 모자란 상품이 잘 팔리는 현실을 구리다고 하는 것인지. 후자라면 반박 논리는 디워가 모자라지 않다가 되어야지 잘 팔린다는 것이 반박 논리가  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심형래씨가 입에 달고 다니는 우리 기술, 우리 것이라는 말. 좀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실체가 참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 나는 디워를 보면서 한국영화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주요 스텝의 대다수가 외국인이고 배우가 외국인이고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까지 한국영화라고 불러야 하나,라는 생각 당연히 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는지. 피터정이 원화를 만들었으니 이언플럭스는 한국영화인 것인가?
디워가 흥행하고 있으니 심형래씨의 방식이 옳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 방식이 과연 다음에도 통하는 방식이냐는 것. 미국 배급을 염두에 두고 할리우드식-소위 블럭버스터라고 불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영화가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심형래씨 말고 또 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런 생각이 만연해서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모두 영어라는 상황이 오면 그때도 가감 없이 충무로의 결단에 박수를 보낼 것인지.
이 이야기가 오바인 것 같지만, 디워가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는 그 기간도 한국영화를 걸어야 하는 기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 72일 스크린쿼터로 보호하려는 것은 한국어, 한국스탭, 한국배우, 한국감독, 한국자본 중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디워라는 현상이 이상 현상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디워를 명품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것들의 조악함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교양머리 없는 것들까지 품어야 하는 것이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충무로의 몫이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지만 독립영화 감독까지 충무로의 일원이라고 믿어버리는 그들의 얄팍하고 잔혹한 감성을 고려하면 과연 설득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교양머리 없는 시대에 소위 작품-영화일 수도 평론일 수도 있겠다-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고뇌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디워빠의 변명을 읽고 2007-08-09 PM 6:53에 추가

한국영화에 대한 정의에서 창작의 어려움까지, 의견 잘 읽었습니다. 반론으로 쓰신 것은 아니니 저 역시 관련 의견을 추가하는 선까지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진흥법에 보면 영화진흥위원회는 공동제작영화의 제작이 완료된 후에 영화진흥위원회의 규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주제와 외양 및 민족성 등을 감안하여 한국영화 인정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예를 드셨지만 미국 사람의 큰 덩치와 생활습관에 맞춘 차를 현대에서 만들면  그걸 우리차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문화가 아닌 상품은 없지만 영화만큼 문화적 속성이 큰 상품도 별로 없습니다. 우리 감성, 우리 언어, 이런 것들에 바탕한 문화이자 상품인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 것이란 것을 브랜드로 규정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시니 당황스럽네요. 디워처럼, 미국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영화가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개봉하기 위해 우리 배우와 우리 언어를 버리면서까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이유가 정말 없을까요? 스크린쿼터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보호하는 건 자본일수도 있지만 우리 문화일 수도 있어요. 충무로가 재수 없다는 것과 우리 배우가 우리 감성을 연기한 영화가 계속 새로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 이 두 가지는 좀 구별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찬가지로, 심형래씨가 선택한 방식과 그가 만들어내는 담론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열기가 식고나면 좀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두 번째로, 제 비꼼에 대해서 하신 이야기는 좀 일방적이네요. 저 역시 상품으로서의 영화라는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교양머리 없는 것들은, 이런 글을 베스트로 만드는 것들,지들이 좋아하는 것 좀 씹었다고 블로그에 몰려가 폐쇄하게 만드는 것들, 문맥도 모르고 삽소리를 천 개씩 쏟아 놓고 다니는 것들입니다. 이런 애들 고려해서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좋은 책, 좋은 영화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요? 귀여니 이야기를 그냥 꺼낸 건 아니랍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우리 애니메이션 좋아해요. 전설의 블루시걸부터 붉은매, 홍길동(이건 좀 아니지만), 화이트데이, 오세암, 최근의 아치와시팍까지 다 보고 기억합니다. 몇몇은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있죠. 다만 그것이 정상적인 장르로 자리잡지 못한 것에는 기술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작용한 면이 크고, 그 부족한 다른 요소가 바로 디워에도 부족한 것이라는 건 시사하는 점이 있죠. 그래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디워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발언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저도 늘보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심형래씨와 디워가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해서 너그럽게 볼 생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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