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드신 김규항씨

Posted 2007. 8. 27. 21:13

민노씨 덕분에 김규항씨가 디워 관련 글을 썼다는 걸 알았다. 김규항 같은 이가 디워 신드롬이 보여 주는 쇼비니즘적 징후를 무시하고 취향 이야기를 꺼내는 건 누군가에 대한 컴플렉스의 발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우리 사회가 박정희 신드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디워빠들의 행태에서 파시즘, 쇼비니즘의 징후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 설정 가능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인기가 박정희 망령에 기대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면 디워 인기는 심형래라는 인간에 대한 쇼비니즘적 감성에 기대었다는 비판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가 취향의 문제라서 그에 대한 재수 없는 경멸을 집단적으로 응징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아니라면, 정치는 어떤 문제라서 김규항씨 본인은 대중의 취향에 그렇게 매몰찬 경멸을 보내고 있었단 말인가? 중학 1년생 딸의 취향과 감상에 '아 그래'라고 말하고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는 분이 대안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있는 것은 또 어떻고. 누군가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이 아니라면 더워를 드셨다고 생각할 밖에......

이번 사태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진중권에 대해선, 집 버리고 떠난 진중권 '프로'를 위한 연가로 대신. 진프로, 저도 환영합니다.


민노씨 덕분에 글을 보았으니 민노씨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면,

황우석 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국가주의에 빠져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였죠. 전, 그 이후로 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에서 황우석, 박정희의 망령을 보게 되었어요. 디워의 경우에도 비슷한 걸 봤다고 해야 겠네요. 그렇지 않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민노씨의 말이 그래서 다르게 들립니다. 정말 우리 안에 무엇인가 위험한 인자가 만연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예민해진 것일 수도 있고 민노씨가 둔감해진 것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논쟁과 흥행을 연결해서 누군가를 바보 만드는 건 그만해주세요. 어떤 것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그 비난 대상을 돕고 있는 거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진중권의 디워 비판이 낳은 홍보는 잠시의 효과일 뿐이지 그게 그의 비판의 전부를 규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 디워와 화려한 휴가에 묻힌 기담 같은 영화가 아쉽기는 하지만 진중권을 매개로 한 디워 논란이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는 생각 안 해요. 더 나아가, 이 논쟁은 진중권, 심형래, 평론가, 그리고 대중이라는 주체들 각각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것을 일개 영화, 회사의 흥행 따위로 한정시키는 건 지나친 단순화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중권의 태도에 대한 비난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비난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가 전략적으로 그런 태도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추측일 뿐이고 홈 페이지 글로 반대자를 애들 취급한 -지금은 지워진- 글들은 문화평론가 진중권이라는 고상한 이름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죠. 다만, 그가 원래부터 친절하거나 얌전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과, 이번 헤프닝은 주류 언론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뿐 몇 몇 게시판에서 그가 하던 행동과 별로 다르지 않은 행동이라는 말은 하고 싶네요. 온라인 매체나 지면의 진중권은 언론 강령을 지키지만 게시판의 진중권은 그런 거 전혀 안 지켜요. 이제 대중 매체가 지켜보는 판에서도 그렇게 놀았으니 앞으로 진중권이 어떤 식의 글 쓰기를 할지 즐거운 기대를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태도에 대한 반응은 이렇게 양 극단이 될 수도 있는 거겠죠?

전 이런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생각 안 합니다. 영웅에 대해, 영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되었고 지식인(?)에 대해 평가할 기회도 되었고 대중적인 글 쓰기에 대한 태도까지 이야기하게 되었으니까요. 아직 못 다한 이야기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미국 개봉 후에 또 한 번 기회가 있겠을테니 디워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해야겠네요. 민노씨 역시 몇 개 글을 더 쓰지 않을까, 그렇게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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