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 사건을 돌아보며

Posted 2007. 5. 6. 19:05

던킨도너츠와 관련해 할 이야기가 더 있다고 생각하고 중간 중간 글을 보충하고 있었지만 바쁘고 게을러서 하드 한 구석에 저장해 두었다가 어제 하루종일 놀고 오늘에야 다시 열었다. 써 놓은 글을 읽어보니 마음에 안 든다. 내가 기름을 붓는다고 이미 지나간 이슈가 다시 타오를리도 없고 이미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나름의 결론을 내릴만큼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각자의 그 결론에 대해 왈가왈부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이미 도너츠에 질려버려서 과감하게 Ctrl+A > Del 해버렸다. 내 결론은 과거의 글에 보충하려고 한다. 대신 원래 글의 일부였던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던킨도너츠와 김승연 사건으로 올블로그가 시끄러운 동안 가끔 보이는 1인 미디어, 책임감이라는 단어들.

우리가 미디어라고 부르는 기성 언론-TV, 신문, 잡지 등-들이 RSS 같은 신디케이션 기술과 메타사이트 등으로 전파력을 확보한 블로거, 그리고 그 집합체인 블로그스피어(Blogsphere)에 대해 대안 미디어라는 섹시한 타이들을 붙여주는 의도를 여전히 의심하고 있지만, 미디어라는 타이틀이 주는 섹시함에 반해 미디어 종사자에 준하는 책임감과 이성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소리들 역시 의도를 모르겠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고 해야할까?

나는 블로거 집단을 지칭할 때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로고스(Logos)의 집합체라는 증거를 아직 발견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로고스의 집합체이거나, -집합적이고 결과적인- 합리적인 의견을 도출하는 공간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던킨도너츠가 맛 없다고 하더라'라는 이야기와 '던킨도너츠가 불결하다고 하더라'는 이야기가 하나는 개인의 취향이 되고 다른 하나는 명예를 훼손하고 사업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를 나에게 잘 설명해 준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이 사건에서 나를 가장 크게 설득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계를 위협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감성적인' 이야기였다고 하면 해명서 따위를 보낸 비알코리아 담당자가 좌절하려나?

나는 광장에서 떠들 권리가 천부인권적인 권리라고 배웠으며 그에 반하는 일들을 그렇게 많이 보고도 아직도 그런 세상이 올거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그런 세상에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라엘리안을 비웃고 도대아에게 짜증낸다. 나아가 그들이 내게 결과적인 피해를 준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광장에서 떠들 권리를 빼앗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는 건 똘레랑스를 발휘하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지키는 일이 어떤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무차별적인 필터링을 당하는 일에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본능적인 자각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아가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말을 필터링하라는 요구 역시 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자신의 생각을 쓴 글은 1명이 읽건 10만명이 읽건 누군가의 생각일 뿐이다. 무슨 소리든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왜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전파된다는 것 때문에 그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생각을 읽거나 보는 그 한 명, 수백만명이 우매하다는 오만한 가정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소리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우매하지 않은 개인이 모인 대중이 우매할 수 없다고 믿는다. 당장의 이슈나 흥미거리에 비이성적으로 반응하는 대중이 개인을 규정하는 개념이 되고 익명의 목소리를 막는 근거가 되는 것에 동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소리가 누군가에겐 라엘리안의 헛소리도 들리거나 도대아의 짜증나는 치근덕친그덕거림으로 느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이 블로그에 글 한 줄 올릴 것이고 메타사이트에 피딩할 것이다. 가끔은 어떤 목적 의식 없이 그러기도 한다. 난 내가 하는 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어떤 책임 의식이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건 블로그스피어는,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당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