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정치인 블로그

Posted 2007. 4. 26. 01:15

오랜만에 올블에 들렸더니 재미있는-그러니까 쌈- 이야기가 인기글에 올라와 있더라. 바로 블로거가 정동영에게 물었더니 답이 없더라라는 글이다. 아래 몇 문장 인용한다.

참 답답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자꾸 뭔가를 기획해 내려고 하는데, 블로고스피어에서 그런 작위적인 접근에 친근감을 느낄 블로거는 아무도 없다. 이건 비아냥이나 들어먹을 짓이다.

그 전에 나와 같은 질문이나 댓글에서 의제를 찾아 만들었으면 얼마나 자연스럽고 좋은가 말이다. 별 수고도 들일 필요 없고 스스로 접근해오는 블로거를 상대로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말그대로 블로깅만 제대로 해도 되는데, 엉뚱한 짓으로 블로거들의 비웃음만 사고 있다.

나는 커서님의 정치성향이나 글 쓰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지만 위에 인용한 커서님의 의견엔 전적으로 동감한다. 메타사이트에 등장한 정치인 중에 블로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인터넷이란 매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보좌관을 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 이재오씨가 있기는 하구나. 이재오씨 자체가 문제라는 문제가 있는 경우지만.

오해 vs. 오해

커서님이 지적한 건 소통의 기회를 져버린 정동영씨에 대한 것이고 트랙백 삭제는 부수적인 거였다. 물론 블로거라면 댓글 삭제나 트랙백 삭제에 뚜껑이 확 열리겠지만 커서님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한참을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블로그로 찾아갔더니 트랙백이 지워져 있었다. 어떻게 지워졌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사람도 어쩔 수 없는 표 구걸하는 정치인이구나 생각하고 포기했다.

정치인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웃긴 일은 정동영씨의 블로그를 관리하는 이스트라님이 나타나 트랙백을 삭제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시작된다. 

이스트라: 커서님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씀하시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글에 거짓이 보이네요.
트랙백 삭제한적 없습니다. 지금도 블로그에 엄연히 트랙백이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정확히 확인하고 글쓰신건가요?

나도 위 글 보고 커서님 나쁜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커서님의 대답이 걸작이다.

커서: 잘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2
http://blog.daum.net/moveon21/3614574 요기로 가서 트랙백한 글 보기를 함 해보시죠. 당시 제가 글 올릴 때는 다음 블로그를 아주 많이 쓰셨습니다. 티스토리블로그는 혹시나 싶어 걸어놓은 거죠.

그러니까 커서님이 말하는 건 정동영씨의 다음 블로그인 것이고 이스트라님이 말하는 건 정동영씨의 티스토리 블로그인 것이다.

이 헤프닝의 결론은 정동영씨 측의 완패다. 디씨 스갤 표현으로 버스 타고 안드로메다 갔다. 물론 다음 블로그가 사실은 이스트라님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정동영씨 팬 페이지이고 커서님이 보냈다는 트랙백은 다른 문제 때문에 다음 블로그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왜 블로깅을 할까?

다들 아는 것처럼 메타사이트에 등록한 정치인은 한 둘이 아니다.

표가 있는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간다는 것이 정치인이니 블로그 메타사이트에 그들이 꽃밭 찾은 벌떼마냥 날아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들 대다수-아니 전부-가 이미 홈 페이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홈 페이지 문제로 돌아와서, 이미 버젓한 홈 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정동영씨가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는 뭘까?

장소만 다르지 올라오는 글은 거기서 거기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합리적이지만 멍청한 이유 하나는 '사용자의 접근성'이라는 것이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유지하는 건 올블 같은 메타사이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말이다.

내가 멍청한 이유라고 표현한 건, 그런 용도라도 사이트는 하나면 충분하다는 거다. 글을 메타사이트에 보내고 싶다면 기존 게시판에 RSS 기능을 추가하면 된다. 요즘 일당 10만원짜리 알바도 그런 건 할 줄 안다. 돈을 조금 더 주면 게시판에 멋지게 트랙백 기능도 달아줄거다.

그럼에도 정동영씨가 블로그를 개설한 건 블로그 메타사이트를 기존 홈 페이지의 체제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다른 매체로 봤기 때문일거다. 어떤 경우에 그건 맞는 생각이다. 싸이 같이 폐쇄적인 네트워크에서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2006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정치인 블로그가 시들해진 건, 아래 인용한 이스트라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들이 거기에 자신의 온전한 목소리를 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블로거분들이 우려하시는 부분 저도 동의합니다.
저도 정치인들이 광고하기 위해 자신이하지도 않고 알바가 하면서 블로그 운영하는 꼴
꼴사납다고 생각해왔던 사람중의 하나구요.
그래서 플레이톡이나 티스토리 블로그나 직접 장관님이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약간의기술적인 부분(복잡한태그나..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처음 접하시는 부분들에 대한 도움정도입니다)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캠프 차원에서 어떠한 이벤트를 하게 된다면 도우미라는 걸 떳떳이 밝히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구요..
만약 제가 이전같은 정치인블로그 관리자였다면 이렇게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대놓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이런 글을 쓰지도 않겠죠.

그런데 이스트라님의 저 발언은 정동영씨 블로그에 정동영이 블로거에게 묻는다!라는 글이 올라온 이후에 쓰여진 거라는 것이 재밌다. 지금까지 정동영씨 블로그는 정치인의 광고(PR) 블로그가 아니었고 정동영씨의 홈 페이지는 정동영씨가 운영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말을 고치면 지금 정동영씨 블로그가 돌아가는 방식을 정동영씨가 직접 운영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정동영씨 홈 페이지도 정동영씨가 직접 운영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냐는 뜻이다. 나아가, 이전-혹은 다른- 정치인의 블로그는 정동영씨 블로그와 정말 달랐나?

정동영씨 블로그-라고 하는-에 있는 글은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실제로 정동영씨가 썼다고 보여지는 글은 Dy's life의 카테고리에 있는 사진과 함께 올라온 짧은 글들이다. DY 칼럼은 홈 페이지에도 올라가는 공식적인 글이므로 보좌관들의 손을 거쳤을 가능성 99%. 나머지 두 카테고리는 이름 그대로다. 그리고 가장 열띤 반응을 얻어낸 글은 Dy's life의 사랑하는 부인이라는 글이다. DY 칼럼의 내용은 홈 페이지에 있는 글을 퍼온거라고 볼 때, 과연 정동영씨의 티스토리 블로그는 정동영씨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아가 기존의 다른 정치인 블로그와 도대체 뭐가 다른 점인란 말인가?

포용하는 범위가 너무도 넓어서 이 경우에 또 써먹기가 무안하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로 들린다고 이야기 안 할 수 없겠다.

그들은 블로거가 될 생각이 있는가?

정동영이 블로거에게 묻는다!라는 글에 달려 있는 시니컬한 댓글과 트랙백이 시사하는 건 단 하나다. 그 대상이 정치인이건 상품이건, 블로거가 원하는 건 소통이란 사실. 정동영의 블로그라면 정동영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란거다.

언론에 노출할 글을-DY 칼럼 같은- 재활용하고, 구색 맞추기로 사진과 짧은 글 한 줄 쓰면서 블로거 정치인 행세할 생각이고 의미 있는 소통까지 바라신다면 더 늦기 전에 블로그 때려치시라고 충고드리고 싶다. 그냥 지금 있는 홈 페이지에 RSS 달고 올블로그에 피딩하셔도 똑같은-어쩌면 사이트 통합으로 더 나은- 효과를 얻으실 수 있다.

그게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 정말 의미 있는 소통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직접 블로거가 되어 다른 블로거들과 일대일로 부딪히시라. 타자가 느리다면 동영상으로 말하면 된다. 운영상의 도움은 그럴 때 받는거다. 중요한 것은 정동영의 진짜 소리여야 한다는 거다. 보좌관의 손을 거친, 트랙백에 회의 따위를 거쳐서 답하는, 그런 정치적인 소리 말고 말이다. 즉각적이고 솔직한 대응이 일전의 노인 발언 같은 논란을 불러올까봐 겁나시나? 그럼 다시 말하지만 블로그 때려치시라. 블로그 따위 안 해도 당신의 팬이나 안티는 당신의 홈 페이지를 잘도 찾아간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정동영이라는 이름을 빌어 쓴 것이고, 기실 블로그스피어를 대중정치매체로 이용하려는 모든 정치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란 것 여러분도 아실거라고 믿는다.

정동영씨의 새로운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정동영씨의 블로그가 정말 그의 온전한 목소리를 대표하기를, 블로거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