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문제에 대한 거친 생각

Posted 2007. 5. 28. 22:23

님의 기자들의 생활과 기자실을 읽고, 몇 가지 시각을 좀 꼬집어 보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이해할 수 있지만, 기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주는 것만 받아먹는다'는 생각은 사실 편견이다. 기자란 직업은 굉장히 경쟁이 심한 직업이다. 똑같은 기자실에 앉아 있어도 언제 물 먹일지 모르는 타사 기자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타사 기자뿐인가. 자사 내에서도 일 잘 하는 기자와 못 하는 기자가 누구누구인지, 모두들 알고 있다. 모든 기사는 '기명'이고, 기자들은 다른 회사와 달리 팀별로가 아니라 각자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는 것만 받아먹어서는' 도대체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지금 언론에 대한 네티즌의 불만 중 하나가 '놀고 먹는 기자들'에 대한 편견이라고 인식하시는 것 같습니다. 구글에서 놀고 먹는으로 검색해 보십시오. 놀고 먹는다고 비난 받은 부류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놀고 먹는 국회의원을 예로 들어 볼까요? 펄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해명을 국회의원들은 못할까요? 아마 잠이 모자라서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을 할겁니다. 기자들이 놀고 먹어서 언론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언론의 모습이 기자들이 놀고 먹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양태임을 비꼬는 직설적이고 관용적인 표현을 말 그대로 받아서 바쁘다고 말하시면 당황스럽습니다. 놀고 먹는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이 거슬리지 않는 감성을 가지고 계시다면 놀고 먹는 기자라는 표현에도 같은 정도의 관용을 보여주세요.

또 '현장을 발로 뛰어야 한다'면서 기자실에 앉아 있는 기자들을 비판하는 경우도 많은데, 현재의 '출입처' 중심 언론 체제에서는 기자실이 있는 건물=현장이다. 과천에 있는 재경부를 취재하는 기자가 서울의 회사 사무실에 출근해서 매일 재경부에 가서 취재를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기사를 쓰고 송고한다? 얼마나 시간이 낭비되며, 제 때 기사 송고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또 사회부 경찰기자는 보통 자신이 맡은 구역(강남, 영등포, 혜화, 마포, 종로 등)의 경찰서 기자실에서 일을 하는데, 자기 회사에 앉아 있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강남으로 뛰어 갔다가 다시 회사로 와서 기사를 쓴다? 강남에 있다가 강남에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으로 뛰어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익명으로 악플을 달고 싶어집니다. 회사로 왜 돌아옵니까? 노트북을 휴대하시고 무선 통신을 하십시오. 가상 사설망(VPN)으로 기사 송고하시면 보안 문제도 많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도 아니고 다들 노트북 가지고 계시고 무선 인터넷 정도는 사용하실 줄 아시지 않습니까? 본사와의 연락은 휴대폰으로 하면 되니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서 기자실이 사라지면 근처 커피숍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강남이면 인터넷 되는 커피숍도 많을 것이고 칙칙한 경찰서 기자실보다 근무 환경도 좋을 것 같은데요? 강남에 있다가 강남 현장으로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은 맞는데 왜 그게 꼭 기자실이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여기까지는 펄님의 해명에 대한 악플러의 반박이었습니다. 악플러 특징은 특정 문장에 까칠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라는 것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위 사례도 기자실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다라는 주장에 대한 실제적인 예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불편함의 실체가 책상, 노트북, 네트웍 같은 어떤 도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 실체를 혹시 숨기고 계신 것은 아닌가(무의식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제가 뭘 몰라서 하는 비난이라면 역시 가감 없이 절 비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기자실에 대한 실체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여기까지는 오랜만에 악플러 기질을 발휘해 본 것이구요, 전 이번 상태를 더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한미 FTA에서 거의 모든 보도를 빠짐 없이 보고 있는데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전제로, 정부측의 주장에 가장 체계적이고 강력한 반론을 제시한 언론은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선진화방안이 시행되면 한미 FTA 보도에서와 같은 정보 부재나 편중이 발생할 거라고 말하는 언론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더 나빠진다는 것인지, 왜 그 문제 많은 브리핑 제도에 대해 몇 년이나 침묵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더군요. 나아가 언론이 문제가 많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브리핑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부분도 선진화 방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선진화 방안이 시행되면 조중동이 더 득세할 거라고 공포심을 주지만 조중동이 가장 큰 목소리로 선진화방안을 반대하고 있는 모순처럼, 지금 언론들이 제시하고 있는 반론에는 모순이 가득합니다. 홍보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포털 뉴스에서 '선진화 방안'을 검색하면 신문 사설과 청와대 브리핑의 반론이 같이 뜨는 시대입니다. 청와대 브리핑이 일방적인 선전 매체라고 비난하지만, 이렇게 모든 언론이 한 목소리로 정부를 비난하고 있는데 그것마저 없으면 그것이야 말로 정보의 불균형 아닐까요?

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자들의 볼멘 소리가 씨도 안 먹히는 상황을 만든 건 바로 기자들 자신입니다. 이상호 기자 X파일 사태, 시사저널 사태, 저도 민노씨와 마찬가지로 언론들이 한 목소리로 언론탄압을 외쳤어야 할 일들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조용하던 집단이 지금 갑자기 이런 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이거 집단 이기주의 아냐'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 수 밖에요. 이런 생각 때문인지 자본, 그러니까 자사의 이익 앞에서는 균형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주류 언론의 기자가 중요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과 농담 따먹기하는 상황이 전 솔직히 더 겁납니다. 권영길씨가 말한 87년 박종철씨 사례 말고 그런 농담 따먹기에서 탄생한 주요 보도가 무엇이 있는지, 일상적인 만남의 자리가 없었으면 발굴하지 못 했을 주요 보도는 또 무엇인지, 그런 것들이 여전히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류 언론이 찬양해 마지 않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대부분의 직업인들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 아실겁니다. 내 알 권리를 대리한다는 권한으로서의 기자를 신뢰한다면 모를까, 직업으로서의 기자 업무가 어려워진다고 말해 봐야 대다수 사람은 별로 관심 없습니다. 주류 언론인 여러분이 다른 직업인들의 그런 소리를 무시해 왔고 그런 냉소적인 국민들을 양산해버렸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러분은 먹고 살 수는 있잖아요?

펄님의 글 읽고 쓰기엔 다소 공격적이고 비약이 심한 글이지만 펄님을 기자사회의 한 통로로 보고 인터넷의 비난이 어떤 것인지 보여드릴 겸-이미 많이 보셨겠지만 직접 트랙백이 걸리면 또 느낌이 다를거라고 생각해서요- 필터링 걷고 썼습니다.

아, 이 글 읽으시는 분들, 혹시 시간 나시면 이미숙 링크를 클릭해서 네이버에서 이미숙 기자 이름 한 번 검색해 주세요. 이런 일은 너무 빨리 잊혀지면 곤란하잖아요. 시간 나면 또 떠들자구요. 소위 주류 언론이 실어줄 때까지요.